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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퉁이로 내밀린 아시안(3)] 공감대 있어야 이민역사 보존…한인사회도 숙제

희미해진 이민사의 흔적을 보존하는 일은 지난한 투쟁이다.   두 번이나 지워질 뻔했던 포틀랜드 론 퍼 묘지의 ‘블록 14’를 지켜낸 건 보존의 공감대가 다방면에 걸쳐 형성됐기에 가능했다.   포틀랜드에 뿌리내린 중국계 이민자들은 이미 그들의 언어를 잃은 지 오래다. 단, 정체성을 지키려는 의지는 그대로다. 이는 한인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국계 혼혈로 4세대인 마커스 리(70·포틀랜드리패밀리협회) 이사는 “초기 이민자가 겪어야 했던 희생을 한번 생각해보라"고 했다.   그는 “우리보다 먼저 온 이민자들이 많은 것을 가능케 했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그들이 이룬 것을 누리고 있다”며 “공로는 시간이 지나면 점점 잊히기 때문에 그 기억을 살려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역사 보존의 투쟁은 중국계만 홀로 나선 게 아니다. 묘지가 속한 버크먼 지역 주민들, 묘지 관리 봉사 단체인 ‘론 퍼 묘지의 친구들’, 정부 기관 등이 모두 역사를 지켜야 한다는 당위성을 인지했다.   묘지는 지역 사회의 역사다. 론 퍼 묘지도 포틀랜드를 세웠던 아사 러브조이, 오리건 정신병원을 개원해 정신 질환자를 돌봤던 제임스 호손 박사 등 유명인의 무덤이 많다.    블록 14에 묻혔던 2892명의 중국계 이민자 역시 이들과 함께 역사의 한 부분이었다. ‘블록 14’만 없애는 것은 이민자를 미국 역사에서 배제하는 일이었다.   이 때문에 2004년 멀트노마 카운티가 블록 14 개발 계획을 발표했을 당시에도 중국 커뮤니티가 아닌 지역 주민들이 먼저 움직였다.   정부 기관인 메트로의 한나 에릭슨 마케팅 담당자는 “그때 지역 주민들도 블록 14에 얽힌 이야기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개발을 반대했었다”며 “반대 여론보다는 오히려 블록 14를 추모 공간으로 만드는 시간이 너무 길어져 좌절감을 느낀 사람이 많았다"고 전했다.   개발은 막았지만, 추모 정원 추진은 또 다른 싸움이었다. 자금이 없었다. 중국계 커뮤니티는 자체적으로 기금을 모으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중국계미국인시민연합(CACA) 헬렌 잉 회장은 “선출직은 임기가 있어 정치인이 바뀔 때마다 그들이 맥락을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며 “그래서 우리는 공무원을 계속 만났고 설득하며 교육했다”고 말했다.   결국 2019년 유권자들은 공원 및 자연 보존을 위해 4억7500만 달러의 채권 발행을 승인하면서 추모 정원 설립이 가시화됐다. 개발을 막은 후 15년의 세월이 흘러 맺은 결실이었다.   메트로는 추모 정원 조성이 시작되자마자 역사 조사 기관(Dudek)부터 고용했다. 블록 14의 역사를 재정리하기 위해서다.    당초 블록 14에 묻힌 중국인이 1113명이 아닌 2892명이었다는 점, 과거 철도 회사가 블록 14의 소유주라는 것은 잘못 알려진 역사라는 점 등을 밝혀냈다.   에릭슨 마케팅 담당자는 “곧 블록 14의 역사적 사실을 담은 보고서가 나올 것”이라며 “연구팀이 매장 기록을 모두 검토하고 오래된 중국어 필체 기록을 해석하고 정리하느라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추모 정원 조성의 기대는 중국계에 국한되지 않는다. 포틀랜드 주민 모두가 염원하는 프로젝트가 됐다. 블록 14에서는 지난해부터 무덤 청소를 위한 중국 청명절 행사도 진행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이 함께 나서 묘지를 가꾼다.   추모 정원 디자인을 맡은 넛 스튜디오(Knot Studio)의 마이클 연 대표는 중국계 혼혈이다. 그는 “디자인에 이민 역사의 이야기를 담았다”고 했다.   연 대표는 “우리 할머니의 경우 상하이를 떠날 때 다시는 형제자매를 못 볼 거라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이민자가 살던 땅을 떠날 때 그리고 동시에 반대편 나라에서 경험하는 정신적 외상에 대한 현실을 보여주고 그것을 치유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늘졌던 곳에 볕이 들자 지워진 역사가 다시 싹트고 있다.   포틀랜드=장열 기자ㆍ사진 김상진 기자 jang.yeol@koreadaily.com   관련기사 모퉁이로 내밀린 아시안(2) 보는 이 없는 기록물…낡은 벽이 이민사 전시장 모퉁이로 내밀린 아시안(1) 지워질 뻔한 묫자리…굴곡의 땅 지켜낸 이민자포틀랜드 역사 보존 초기 이민자 역사 재정리

2023-10-31

[독자 마당] 굿사마리탄

40여 년 전 미국에 이민을 와 LA한인타운에 있는 한인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을 시작했다. 미국에서의 첫 직장이었던 셈이다.     당시 경제적인 문제는 물론 초기 이민자로 정신적인 어려움도 컸다. 하지만 나에게 닥치는 순간들을 묵묵히 잘 받아들여야 했고 그것에 잘 적응해야만 했었다.   시간당 4달러50센트의 임금을 받으며 시작한 이민 생활이었다. 아파트 렌트비는 월 290달러. 힘들었지만 그래도 삶을 감사하며 잘 견뎌냈다.     그리고 지금도 존경하는 의사 선생님을 그 병원에서 만났다. 그의 삶 속에서 인격적인 진실함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오래된 일이지만 그 선생님을 존경하게 된 일화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어느 날 병원 문 앞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초라한 행색으로 봐 홈리스가 틀림 없었다. 그는 의식이 없었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의사 선생님은 바로 그를 X레이룸으로 옮긴 후 반듯하게 눕히고 CPR(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그리고 ‘마우스 투 마우스’로 공기를 불어 넣어 주었다. 다행히 호흡이 돌아왔고 그는 목숨을 건졌다.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그 누가 홈리스의 입술에 자기 입술을 댈 수가 있겠는가. 나는 깜짝 놀랐지만 묵묵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분은 환자가 없는 시간에는 늘 성경책을 읽곤 했다. 그리고 LA한인타운과 가까운 굿사마리탄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을 찾아 진찰도 했다. 병원 직원들도 항상 인격적으로 대해 주시고 싫은 내색 한번 하지 않으셨다.  그런 점에서 참으로 감사하게 생각하며 더 열심히 일했던 기억이 난다.       성경에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그 말씀대로 진실함이 몸에 밴 그분의 삶을 박수로 힘차게 응원하고 싶다.     이젠 팔순이 되셨을 덴데 어디에 계시든지 늘 강건하시기를 기원하고 싶다.  김선애·부에나파크독자 마당 한인 병원 병원 직원들 초기 이민자

2022-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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